by 다야코

[노리시마] 회색세계의 탈출구 : ( 첫번째 길
─그래.
언제부턴가, 나에게서 파아란 하늘은 사라져버렸다.
이젠-, 익숙하니까.
잿빛 하늘.
회색의 하늘.
─어두운, 하늘마저.
   내 세계의 일부.

하하,
흐느끼듯 웃으며 자신의 품에 안겨, 아직도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는 작은 아이를,
소중하게, 두손으로 껴안으며 속삭였다.


"시끄러우니까, 닥쳐."



─아아, 빛이여.
구름이란 장애물을 뚫고 나에게,
그 따스한 온기를-.



-*-*-*-*-*-*-*-*-*-*-*-*-*-*-*-*-*-*-*-*-*-*-*-*-*






장미회관으로 가는 길에서, 우연히 토오코를 발견했다.
뻗어있는 길 옆의 숲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노리코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먼저 앞서가는 토오코에게로 뛰기시작한다.
척, 척. 언뜻 들으면 퍽 퍽 같기도 한 그 소리는 진흙이
벽돌에 뭉개지는 소리다.
에이이잇, 스피드를 낮추며 그녀의 뒤에서 진흙이 많이
캥겨있는 오른쪽 신발을 들어 휙휙휙 하고 허공에 발길질했다.
아앗, 몸을 갸우뚱하며 균형을 잡고는, 무슨 일인지,
어울리지 않게 한가득 서류를 들고가는 토오코에게서
허락도 없이 한아름의 종이 뭉텅이를 뺏어들었다.

"도와줄게, 토오코"
"노리코양? 고마워-평안하세요,"
"평안하세요, 무슨 일 있어? 짐이 많네"
"아, 단지 장미관....어디서 오는 거야?"


옆에 서 같이 걷기시작한 노리코를 바라보던 토오코의
얼굴이 굳어진다. -우와, 무서워. 귀신이라도 본 듯 굳어져
버린 토오코의 표정에 노리코가 어깨를 으쓱하며 한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걱정마, 일단 손에는 진흙같은 거 안 묻었고 토오코에게서
떨어져 걸을테니까."
"아니, 노리코양, 그런 것보다도-"
"아아, 역시. 장미관에 들어갈때는 발을 닦고 들어가야,"
"노리코양─!!!"
"─에, 에에,"

놀랐다.
놀라서 토끼눈을 뜬 채로 멈춰섰다. 놀라서 멈춰선것은 아니다,
단지, 크게 소리친 후 자리에 굳어버린 토오코를 따라
자리에 멈춘 것 뿐.
어어, 뭐야. 나 그렇게나, 소리칠 정도로 잘못한건가.
놀라 입을 굳게 다물고 토오코를 쳐다보는데 토오코는
눈에 띄게 동요하며 안고 있던 종이뭉텅이들을 놓치듯 떨어뜨렸다.
퍼석ㅡ,
하는, 종이다발이 바닥에 흩어지는 소리.

"아, 에, 노-리코양..."
"──, 그러니까, 토오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다른 손을 얼굴쪽으로 뻗어오는
토오코에 노리코가 당황해 한쪽 눈썹을 찡그린다.
싫은게 아니라 당황스럽다. 토오코의 한 손이 자신의 뺨에
스치듯 다았을 때 노리코는
저기, 종이 젖어, -하고 들고있던 종이를 토오코에게 넘기곤
허리를 수그려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종이들을 긁어모았다.
사악. 삭.
종이가 부딪히는 소리.
...도와줄줄알았는데. 역시 공주님.
노리코가 자신의 검은 머릿결 사이로 보이는 토오코의
얇은 다리를 보여 쓴웃음 지었다.

"잇차."

생각보다 멀쩡한 상태의 종이를 가슴에 앉으며 노리코가
허리를 폈다. 뭐, 물보다는 약간의 흙이 묻어있었지만,
그 정도야. 어차피 더러워진 교복이니,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안좋지만- 그래도 토오코의 깨끗한 교복을 더럽힐 바엔
이쪽이 훨씬 낫다.
애초에 준다고 해도, 받을 것 같지도 않고.
노리코가 삐죽 삐죽 새나와있는 종이를 잘 정리하는데
그때까지 멀뚱히 서있던 토오코가 얼굴 가까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손수건. ─피. 얼굴에."
"어라? 피?"

스윽, 무심코 한쪽뺨을 쓸어본다. 부드러운 살의 느낌과 다른
뻣뻣한 느낌이, 분명 피가 굳어버린 자국이었다.
아, 그래서 아까 그렇게 놀랐던건가. 노리코가 토오코의
얼굴을 보는데 토오코는 그런 노리코를 보더니 왠지모르게
인상을 썼다.

"청결치못해, 노리코양. 빨리 닦아."
"아, 그래. 고마워, 토오코."

손을 내밀어 손수건을 받아든다.
아까 나오다 베였나.. 작게 중얼거리며 스윽. 볼을 훔치려 하다
멈칫하곤, 토오코에게 승인을 구했다.

"토오코. 피로 얼룩진 것은, 잘 지워지지 않는데. 알고있어?"
"에, 딱히, 상관없으니까."
"─응, 그럼."

슥, 조금 이상한 답변에 고개를 갸웃하며 손수건으로 볼을 훔치곤,
그럼 갈까, 하며 먼저 발걸음을 놀린다.
이내 토오코가 자연스레 함께 걷기시작하고, 피 묻은 손수건을
접어 주머니 속에 넣자 토오코는 눈을 깜박였다.

"손수건, 돌려주는 게,"
"아니, 이건 우선 세탁한 후에 돌려줄게. 얼룩을 지운 후에."
"─응."

토오코의 대답을 듣고 말없이 걷기 시작한다.
멀리 보이는 장미관. 진흙이 다 떨어진 건지 걸을때마다
저벅 저벅,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노리코는 앞을 향해
나아갔다.
저벅 저벅 저벅.
사악. 삭.
종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어울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발소리.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발을 내딛일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장미관을 보며,
노리코는 어딘가모르게 거북한 느낌을 받았다.

-시마코씨.
시마코씨는, 와, 계실까.

꿀꺽.
무거워진 목에 억지로 침을 삼킨다.
긴장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몸에 영향이 올 정도로 신경쓰고 있다.
정말로, ..지금 장미관에 계실까,
이내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을 피하듯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까까지 구름 한점 없이 파랬던 하늘은 어느새 회색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회색빛의, 하늘.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퍼뜩 한가지 모순을 깨달았다.
....도대체 지금, 몇 시나 된거지?
시선을 35도쯤 내려, 앞을 바라본다.
어느새 장미관은 크게 확대되, 앞으로 몇 십초 후면 분명히
다다를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계속 발을 내딛이며, 노리코가 토오코를 보았다.

"지금 몇 시 정도 됬어, 토오코?"
"──오후 5시 2분."

대충 어림잡이로 물어본 것인데, 토오코가 요령있게 손목을
돌려 종이를 안은 상태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아, 하고 대답하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회색빛의 하늘은, 어두어진 것이 아니다.
아니, 어두워진 것이 아니다, 란 것은, 하늘이 지구의 자전에
의해 어두워진 것이 아니란 말이다.
즉, 이것은-,

"──비구름,"

하고, 탄성을 내뱉 듯 짧게 중얼였다.
─비.
─, 비구름.
어느새 회색에서 더 짙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다,
노리코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떨궜다.
태풍을 연상케하는 급조스런 하늘의 변화는,
앞으로 한바탕, 크게 몰아칠 것을 예언하는 듯 했다.
이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든다.

"아아, 뭐야.."

우산, 교실에 놔두고 왔는데.
-장미관이었다.









"갔다왔어요, 언니들."
"평안하세요."

해맑게 웃으며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는 토오코를 따라
노리코도 안으로 들어갔다.
눈 앞에 펼쳐지는 건, 익숙한 풍경에 익숙한 사람들.
다들 평소와 같은 자리에 앉아 무엇인가를 회의하고 있었다.

"수고했어, 토오코쨩. -노리코쨩도 왔네?"
"어서와, 지금 이번 축제에 관해서 회의하고 있었어."
"조금 늦었구나-노리코."

처음엔 레이님, 그 다음엔 유미님. 그리고, 마지막으론
사치코 님.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을 반겨준다.
잠깐 차를 리필하러 갔었는지 모두의 찻잔을 올린 쟁반을
가져오며 요시노님도 살짝 인사를 건냈다.
다시 꾸벅, 인사를 하며 자신의 자리, 즉 시마코씨의 곁으로
차분하게 다가간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다가 잠시 볼 일이 생겨, 처리하느라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모두에게 사과를 하며 전용의자를 빼곤 그 위에 앉아
가방을 발가에 내려놓는 둥 나름대로의 짐정리를 했다.
아, 그러고보니, 문뜩 손가에 들려져 있는 종이뭉텅이를
의식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사치코님에게 다가갔다.
뭐지? 하고, 조금도 숨김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치코님에게 두 손으로 가지고 온 서류를 전달했다.

"오는길에 토오코와 만나 들고온 서류입니다."
"고마워."

사치코님이 살짝 웃으며 그것을 받아드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임무를 마쳤음에도, 더욱 불편해진
마음으로, 사치코님에게 가까운 시마코씨의 뒤를 지날 때
노리코는, 흘끗, 그녀를 곁눈질했다.

"────,"

시마코씨는 조용히, 우아한 자세로 요시노님이 리필해 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무심코 입술을 깨무려는 것을 참으며 노리코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평정을 가장한다. 늦게 온 노리코와 토오코를
배려해 간단하게 재설명에 들어가는 사치코님의 말씀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단지 모든 신경은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토도 시마코'란
인간에게 쏠여있을 뿐.
어쨰서일까.

───어째서, 당신은
내게 인사해주지 않는거야.



"노리코?"
"───예?"
"뭐하고 있는 거니. 집중하렴."
"──네, 죄송합니다."

멍하니 있었나보다.
사치코님에게 충고를 받고 정신을 차렸다. 모두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문뜩,
시마코씨쪽을 곁눈질한다.
──여전히, 차.
전혀, 이 쪽은 전혀 바라보고 있지 않다.

"하.."

코웃음 치는 소리가 났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풀이 죽어버렸는지 기운없는 소리가 났다.
다시 예리한 사치코님이 이쪽을 주목했을 때, 토오코가
왼손을 90도로 들며 제의했다.

"노리코양와 함께 양호실에 다녀올게요. 아까 만났을 때
피부에 상처가 있었는데, 저를 도와 급히 장미관으로 오는
바람에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거든요. 혼자 치료하기엔 조금
힘겨운 부분이 있으니까, 같이 갔다올게요."
"─그러렴."

사치코님이 순수히 허락한다. 상대가 상대이기 때문일까,
아님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일까. 어찌됬든 현재 장미관을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노리코가 이것을 만류하기
위해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고개 저었다.

"아, 괜찮습니다. 저는,"
"노리코양, 여자가 그런 곳에 흉터남기면 곤란해.
보기 흉하잖아, 빨리 나와."
"앗, 토오코, 잠, 깐-"

어느새 다가온 토오코가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간다.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완력일까. 자신의 것보다 얇아 보이는
손목을 바라보며 의자를 넣을세도 없이 노리코가 허둥지둥
끌려나간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밝게 인사하며 문 밖을 나가는
토오코. 그에 이끌려 급히 밖으로 나가는 노리코가 문을 닫기 위해
억지로 몸을 비틀었다.
문 손잡이를 잡는다.
노리코가 토오코에 끌려감에 따라 문이 닫힌다.
90도.
65도.
45도.
20도.
─제로.
쿵,

사뿐사뿐, 앞서가는 토오코와는 달리, 쿵쿵 이라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노리코가 뒤쫓아간다.

"───아, 잠깐, 달리지,"
"노리코양, 늦으면 양호선생님, 퇴근해버리실 거야."
"잠깐, 토오코. 손목,"
"………~,"

어째서인지 토오코가 신나하는 것 같다고 막연히 느끼며,
요란스럽게 계단을 내려간다.
잠깐, 하고 노리코는 뒤돌아 점점 멀어지는 2층의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올려다본다.

"………,"

분명.
노리코는 회상한다.
손잡이를 잡고, 토오코를 쫓아가고, 문이 닫히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
열려진 문틈 사이로 보인 시마코는, 노리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리시마] 회색세계의 탈출구
                                                  : ) 첫번째 길




by 다야코 | 2007/04/21 12:41 | 마리미테s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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